[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④ 팔공산 백흥암선원
[불기2534(2007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4:20
조회
2848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
팔공산 백흥암선원
20년도 훨씬 전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백흥암 가는 길은 깊은 산속이었고 교통편이 불편하여 비포장 산길이었다. 그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마을사람들이 경운기를 태워주어서 타고 갔던 생각을 하니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든가, 길도 많이 변하고 차량을 이용하니 빠른 시간 내에 백흥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천도재가 있는 날이고 금요참선 법회가 있는 날이라 다소 부산한 느낌이었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선방수좌들의 침묵 같은 무게감이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스님의 안내를 받고 극락전 옆의 요사채 방에 들어서니 그곳은 작은 갤러리였다. 사진작품들이 깔끔하게 걸려 있으며 스님들의 운력사진도 작품으로 승화되어 있고 인물 좋은 소나무 사진도 백흥암의 오래된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멋스럽게 서 있었다.
회주스님(육문), 선원장이신 영운스님께서 자리를 해주셨다. 주지스님, 입승스님(정현)과 선방대중 22명 그밖에 기도 외호하는 스님, 토굴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합쳐서 40여 명의 대중이 이번 결제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회주스님 스님께서 처음 80년대 초 이곳에 오셨을 때는 살림이 어려워 쌀을 얻어다 먹기도 하고 또 부인사 성타스님께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어려운 시절의 신기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내일 공양을 지을 양식 없어 난감해 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 50대 거사 한 사람이 쌀 7가마니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분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배가 고프니 쌀을 가져오너라 하는 꿈을 연거푸 꾸고는 꿈에 일러준 길을 따라 왔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 백흥암이라고 하였다.
회주스님이 27년 동안 여기 살면서 도량 곳곳에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정돈된 깔끔함과 큰 규모의 선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회주스님께서 수좌시절 공부를 위해 처음 백흥암에 왔을 때는 너무 낡아서 바깥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다 다시 들러 법당 부처님을 참배하니 부처님이 너무 거룩하셔서 처음에 그냥 돌아섰던 것을 후회하셨다고 한다. 지금 선원장 스님이신 영운(靈雲)스님과 27년을 같이 이 도량에서 살아오면서 선원장 스님은 선방을 지키고 회주스님께서는 바깥일을 주로 보면서 백흥암을 오늘날 선객들이 정말 공부해보고 싶다는 도량으로 일구어 놓으셨다.
선원장 스님은 6년을 석남사에서 수행하고 오신 것 외에는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선원의 스님들은 선원장 스님의 행동 모습만 보아도 수좌들의 모범이 되며 백흥암은 산철결제도 한다고 한다.
회주스님은 일을 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씀하시지만 일을 하는 가운데도 여일하게 화두를 챙기며 선과 일의 일치를 설파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선원의 규칙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도량은 봉암사를 제외하면 이곳 백흥암이 유일한 곳이 아닌가 한다. 일체의 외인 출입을 금하고 오직 사월초파일과 백중날만 문을 개방한다. 문을 잠그고 산 지 27년이 되었다고 한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산내 암자로 신라 경문왕9년(869)해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사찰주위에 잣 나무가 많아서 백지사라고 하였다. 그후 이조명종1년(1546)天敎大師에 의해 백흥암으로 개칭되었으며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백흥암 극락전(보물제 790)은 건물구조가 우아하면서도 조각솜씨가 섬세한 것이 특징이며 극락전 내부에는 보물 젤486호의 이조 후기 작품의 하나인 목조불단 인 수미단과 감로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이조 중종의 왕세자 胎를백흥암 북쪽 태실봉에 봉안하면서부터 국가에서 보호받는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백흥암은 가람 전체가 보물창고이다. 법당 자체가 보물이고 수미단과 감로탱화 등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이 모두가 보물이지만 그러나 회주스님이 강조하는 말씀은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서 문을 잠근 것이지 결코 보물을 위해서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살짝 돌아보니 지금도 극락전 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스님께서 이곳은 생지장(生地藏) 도량으로 문만 열어놓으면 나가서 탁발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수행에 큰 비중을 두신 것이라고 한다. 항상 선원의 스님들 공부에 애쓰는 모습을 보면 환희심이 난다고 하신다.
선원장 스님께 선객들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를 여쭈었더니 딱히 지도랄 것이 없고 선원 스님들이 공부를 착실하게 잘하고 있다고 하신다. 물의를 일으킨 선객도 여기에 오면 아주 공부를 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큰스님 법문이 귀한 곳이라 열흘에 한 번은 전강 큰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법문을 테이프로 경청한다. 가행정진이나 용맹정진이 따로 없고 산행 목욕 후에도 일체 쉬는 시간이 없이 항상 여일하게 공부를 지어나가며 도량 전체가 묵언을 하면서 정진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큰방 스님들을 보고 후원스님들이 신심을 내고 선방스님들이 신심을 내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하신다. 초심자들은 회주스님, 선원장 스님께 공부의 어려움을 여쭙고 또는 각자가 알아서 신(信)하는 스님께 여쭈어서 조용히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를 지어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 선방에 나온 스님들은 어떻게 지도를 하시는지 여쭈어 보니 선원장 스님께서 처음 선원에 나온 스님들도 무리에 이끌려서 잘 살고 있으니 달리 걱정할 것 없고 다만 선을 하는 신념과 신심만 확고부동하면 된다고 하셨다.
회주스님은 옛날 양진암에서 정진하실 때 그때처럼 지극히 애쓰는 스님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그때는 자다가 문득 잠이 깨어서 보면 스님들이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정진하는 것을 보고는 이러다가는 나만 공부가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분심을 일으켜 자다가 일어나 정진을 하곤 했다. 또한 그때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차가운 바깥에서 잠을 깨우는 스님들을 많이 보았는데 지금은 착실하게는 하지만 도를 깨치기 위해 무진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고 외호의 정신도 요즘은 옛날을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대신심 대발심 대분심으로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드물다는 말씀 같다.
17세에 출가하시어 동산 큰스님께 보살계 사미니계를 받을 그 당시에는 큰스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지금은 수좌들의 수는 더 많아졌지만 그런 큰스님들을 친견하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한다.
선원의 질서는 선문회를 통해서 많이 잡아진 것 같다고 한다. 선원의 규칙이 여러 곳에 방부를 못 들이는 것이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거의 그런 일들이 없다고 한다. 그전에는 무리를 지어서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곳 저 곳 여러 곳에 방부를 들여 놓고는 한 곳만 선택해서 가버리고 하니 질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님들이 잘 지켜준다.
현대사회에서의 선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선원장 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수행을 잘 하는 것이 곧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작년 9월부터 설선당에서 매주 금요법회를 하고 있는데 1주일에 한 번인데도 일반인들에게 매우 호응이 좋아서 참선을 생활화하며 부처님 말씀을 진실로 믿고 따라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한다. 또 이들은 1시간은 법문을 듣고 2시간 앉아서 참선을 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백흥암에서 참선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참선을 익혀왔고 이제는 실습을 하는 단계라고 하면서 너무나 환희심을 내고 아주 좋아한다고 하였다. 수행열풍이 일고 있는 때에 매우 유익한 방법이며 대사회적으로도 선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계셨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금요일이라 도량이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한 가지 바람은 우리 비구니 선원만이라고 습의가 같았으면 하는 것이란다. 즉 포행을 할 때면 혜국스님의 말씀을 빌어 서옹 큰스님 가풍으로 해야 된다고 하신다. 회주스님은 일본은 선법이 남아 있고 우리나라는 용두사미격이라 하시며 “몸에 화두가 배어 있는 것은 바라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산만하면 화두가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이며 공부인의 태도는 항상 조신해야 한다”고 조용히 일침을 가하신다.
대중의 건강관리는 소임자가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하고 한의사가 내방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기도 한다. 여기서는 벌에 쏘이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좌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주스님의 말씀이 시작되자 어디선가 조그마한 산 비둘기 한 마리가 단풍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알아듣는 듯이 비가 와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좌담이 끝나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스치듯이 취미가 일하는 것이라 하신 회주스님의 말씀은 항상 편안한 것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매서운 말씀으로 불현듯 가슴을 파고들었다.
총무원이나 비구니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요구사항은 없고 비구수좌회에는 총무원에서 지원이 있는데 비구니 선문회에는 지원이 없다고 하시며, 자꾸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그 법에 묶이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한 말씀 하셨다.
고즈넉한 선방의 분위기에 같이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사정으로 마음이 쓰였지만 이 도량에서 참선을 하는 스님들과 또한 참선법회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세속인들이 옛날 중국의 어느 사찰아래 떡 파는 노파처럼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인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냐”고 하는 선문답이 오고 갈 날을 기대하며 세월과 함께 곱게 나이를 먹은 보화루(寶華樓) 옛 누각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팔공산 백흥암선원
20년도 훨씬 전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백흥암 가는 길은 깊은 산속이었고 교통편이 불편하여 비포장 산길이었다. 그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마을사람들이 경운기를 태워주어서 타고 갔던 생각을 하니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든가, 길도 많이 변하고 차량을 이용하니 빠른 시간 내에 백흥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천도재가 있는 날이고 금요참선 법회가 있는 날이라 다소 부산한 느낌이었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선방수좌들의 침묵 같은 무게감이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스님의 안내를 받고 극락전 옆의 요사채 방에 들어서니 그곳은 작은 갤러리였다. 사진작품들이 깔끔하게 걸려 있으며 스님들의 운력사진도 작품으로 승화되어 있고 인물 좋은 소나무 사진도 백흥암의 오래된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멋스럽게 서 있었다.
회주스님(육문), 선원장이신 영운스님께서 자리를 해주셨다. 주지스님, 입승스님(정현)과 선방대중 22명 그밖에 기도 외호하는 스님, 토굴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합쳐서 40여 명의 대중이 이번 결제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회주스님 스님께서 처음 80년대 초 이곳에 오셨을 때는 살림이 어려워 쌀을 얻어다 먹기도 하고 또 부인사 성타스님께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어려운 시절의 신기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내일 공양을 지을 양식 없어 난감해 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 50대 거사 한 사람이 쌀 7가마니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분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배가 고프니 쌀을 가져오너라 하는 꿈을 연거푸 꾸고는 꿈에 일러준 길을 따라 왔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 백흥암이라고 하였다.
회주스님이 27년 동안 여기 살면서 도량 곳곳에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정돈된 깔끔함과 큰 규모의 선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회주스님께서 수좌시절 공부를 위해 처음 백흥암에 왔을 때는 너무 낡아서 바깥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다 다시 들러 법당 부처님을 참배하니 부처님이 너무 거룩하셔서 처음에 그냥 돌아섰던 것을 후회하셨다고 한다. 지금 선원장 스님이신 영운(靈雲)스님과 27년을 같이 이 도량에서 살아오면서 선원장 스님은 선방을 지키고 회주스님께서는 바깥일을 주로 보면서 백흥암을 오늘날 선객들이 정말 공부해보고 싶다는 도량으로 일구어 놓으셨다.
선원장 스님은 6년을 석남사에서 수행하고 오신 것 외에는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선원의 스님들은 선원장 스님의 행동 모습만 보아도 수좌들의 모범이 되며 백흥암은 산철결제도 한다고 한다.
회주스님은 일을 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씀하시지만 일을 하는 가운데도 여일하게 화두를 챙기며 선과 일의 일치를 설파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선원의 규칙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도량은 봉암사를 제외하면 이곳 백흥암이 유일한 곳이 아닌가 한다. 일체의 외인 출입을 금하고 오직 사월초파일과 백중날만 문을 개방한다. 문을 잠그고 산 지 27년이 되었다고 한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산내 암자로 신라 경문왕9년(869)해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사찰주위에 잣 나무가 많아서 백지사라고 하였다. 그후 이조명종1년(1546)天敎大師에 의해 백흥암으로 개칭되었으며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백흥암 극락전(보물제 790)은 건물구조가 우아하면서도 조각솜씨가 섬세한 것이 특징이며 극락전 내부에는 보물 젤486호의 이조 후기 작품의 하나인 목조불단 인 수미단과 감로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이조 중종의 왕세자 胎를백흥암 북쪽 태실봉에 봉안하면서부터 국가에서 보호받는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백흥암은 가람 전체가 보물창고이다. 법당 자체가 보물이고 수미단과 감로탱화 등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이 모두가 보물이지만 그러나 회주스님이 강조하는 말씀은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서 문을 잠근 것이지 결코 보물을 위해서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살짝 돌아보니 지금도 극락전 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스님께서 이곳은 생지장(生地藏) 도량으로 문만 열어놓으면 나가서 탁발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수행에 큰 비중을 두신 것이라고 한다. 항상 선원의 스님들 공부에 애쓰는 모습을 보면 환희심이 난다고 하신다.
선원장 스님께 선객들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를 여쭈었더니 딱히 지도랄 것이 없고 선원 스님들이 공부를 착실하게 잘하고 있다고 하신다. 물의를 일으킨 선객도 여기에 오면 아주 공부를 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큰스님 법문이 귀한 곳이라 열흘에 한 번은 전강 큰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법문을 테이프로 경청한다. 가행정진이나 용맹정진이 따로 없고 산행 목욕 후에도 일체 쉬는 시간이 없이 항상 여일하게 공부를 지어나가며 도량 전체가 묵언을 하면서 정진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큰방 스님들을 보고 후원스님들이 신심을 내고 선방스님들이 신심을 내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하신다. 초심자들은 회주스님, 선원장 스님께 공부의 어려움을 여쭙고 또는 각자가 알아서 신(信)하는 스님께 여쭈어서 조용히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를 지어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 선방에 나온 스님들은 어떻게 지도를 하시는지 여쭈어 보니 선원장 스님께서 처음 선원에 나온 스님들도 무리에 이끌려서 잘 살고 있으니 달리 걱정할 것 없고 다만 선을 하는 신념과 신심만 확고부동하면 된다고 하셨다.
회주스님은 옛날 양진암에서 정진하실 때 그때처럼 지극히 애쓰는 스님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그때는 자다가 문득 잠이 깨어서 보면 스님들이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정진하는 것을 보고는 이러다가는 나만 공부가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분심을 일으켜 자다가 일어나 정진을 하곤 했다. 또한 그때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차가운 바깥에서 잠을 깨우는 스님들을 많이 보았는데 지금은 착실하게는 하지만 도를 깨치기 위해 무진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고 외호의 정신도 요즘은 옛날을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대신심 대발심 대분심으로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드물다는 말씀 같다.
17세에 출가하시어 동산 큰스님께 보살계 사미니계를 받을 그 당시에는 큰스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지금은 수좌들의 수는 더 많아졌지만 그런 큰스님들을 친견하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한다.
선원의 질서는 선문회를 통해서 많이 잡아진 것 같다고 한다. 선원의 규칙이 여러 곳에 방부를 못 들이는 것이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거의 그런 일들이 없다고 한다. 그전에는 무리를 지어서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곳 저 곳 여러 곳에 방부를 들여 놓고는 한 곳만 선택해서 가버리고 하니 질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님들이 잘 지켜준다.
현대사회에서의 선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선원장 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수행을 잘 하는 것이 곧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작년 9월부터 설선당에서 매주 금요법회를 하고 있는데 1주일에 한 번인데도 일반인들에게 매우 호응이 좋아서 참선을 생활화하며 부처님 말씀을 진실로 믿고 따라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한다. 또 이들은 1시간은 법문을 듣고 2시간 앉아서 참선을 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백흥암에서 참선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참선을 익혀왔고 이제는 실습을 하는 단계라고 하면서 너무나 환희심을 내고 아주 좋아한다고 하였다. 수행열풍이 일고 있는 때에 매우 유익한 방법이며 대사회적으로도 선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계셨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금요일이라 도량이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한 가지 바람은 우리 비구니 선원만이라고 습의가 같았으면 하는 것이란다. 즉 포행을 할 때면 혜국스님의 말씀을 빌어 서옹 큰스님 가풍으로 해야 된다고 하신다. 회주스님은 일본은 선법이 남아 있고 우리나라는 용두사미격이라 하시며 “몸에 화두가 배어 있는 것은 바라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산만하면 화두가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이며 공부인의 태도는 항상 조신해야 한다”고 조용히 일침을 가하신다.
대중의 건강관리는 소임자가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하고 한의사가 내방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기도 한다. 여기서는 벌에 쏘이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좌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주스님의 말씀이 시작되자 어디선가 조그마한 산 비둘기 한 마리가 단풍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알아듣는 듯이 비가 와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좌담이 끝나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스치듯이 취미가 일하는 것이라 하신 회주스님의 말씀은 항상 편안한 것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매서운 말씀으로 불현듯 가슴을 파고들었다.
총무원이나 비구니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요구사항은 없고 비구수좌회에는 총무원에서 지원이 있는데 비구니 선문회에는 지원이 없다고 하시며, 자꾸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그 법에 묶이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한 말씀 하셨다.
고즈넉한 선방의 분위기에 같이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사정으로 마음이 쓰였지만 이 도량에서 참선을 하는 스님들과 또한 참선법회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세속인들이 옛날 중국의 어느 사찰아래 떡 파는 노파처럼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인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냐”고 하는 선문답이 오고 갈 날을 기대하며 세월과 함께 곱게 나이를 먹은 보화루(寶華樓) 옛 누각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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