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Ⅰ] 전국 비구니 선원 탐방

[불기2534(2006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4:11
조회
1931
[기획특집Ⅰ] 전국 비구니 선원 탐방

석남사 정수선원


차가 울주군에 들어서면서 문득 산세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한번 올라간 높다란 산의 흐름이 내려올 줄 모르고 병풍처럼 둘러 있는 모습이 흡사 용마의 등줄기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이 개창된 가지산 자락이다.
석남사로 향하는 중에 도로 가에 세워진 한 건물에 ‘석남사 포교당’이라는 현판이 눈이 띠었다. 깊은 산중의 조용한 선원만을 그렸는데 포교에도 힘을 쏟고 있음이 느껴진다. 포교당을 지나고도 한참을 가니 우리나라 비구니 선수행의 지남(指南)이 되고 있는 석남사 일주문이 당당한 위용을 드러낸다. 가지산 석남사(迦智山 石南寺)란 편액 하단, 석남사 일주문에는 또 하나의 현판이 걸려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립특별선원’ 조계종 종립선원은 국내에 두 군데가 있다. 그 하나는 비구스님들이 수도하는 희양산 봉암사 희양선원이고, 다른 한 곳이 비구니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는 이곳 석남사이다.

과연 석남사는 가람의 규모나 짜임새부터 남다르다. 30여 동의 전각 중앙에 부처님 진신 사리탑과 대웅전이 있고, 좌우 끝 상측에 상선원에 해당하는 심검당과 금당선원이 각각 자리해 있다. 우측 끝에 있는 금당선원은 과거 동인암이 있던 자리로서 현재 선원 경력 5년 이상의 수좌들이 1년 결사를 하고 있다. 대웅전 좌측 끝, 하선원에 해당하는 정수원 위쪽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심검당이 있다. 이와 같이 석남사의 선방은 세 곳이다. 그러나 어찌 선을 닦는 곳이 이 세 곳뿐이랴. 불보살의 현신인 양 도량을 외두르고 있는 신령스런 산 기운에 싸여 앉은 석남사는 곳곳이 좌선처요, 전각마다 선방임을 아무라도 알아챌 수 있다.
주지스님이나 입승스님, 어느 누구의 설명이 없더라도 석남사는 고요한 가운데 생동하고, 생동하는 가운데 중량감이 있다. 오랜 역사와 깊이 있는 수행 전통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아름답고 깊이 있는 도량을 구석구석 살펴볼 시간적 여유가 없음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해가 높다란 산머리에 걸렸을 때 당도하여 경보라도 하듯이 도량을 돌아보고 나서 정수선원 아래쪽 선열당에서 선원장이신 무념(無念)스님을 뵈었다. 엄격한 수행가풍의 좌장이시고 많은 대중의 어른으로 계시는 스님은 의외로 이번 수해로 인한 피해와 우려로 첫 구를 떼셨다. 단아하고 청정한 위의를 갖추신 가운데 자애로움이 느껴졌다. 공부의 길을 가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한 말씀을 부탁드렸다.
“중 될 때부터 우리 스님(인홍스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수도원은 용광로와 같고 대장간과 같다. 새로 쇠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셨다. 그리고 항상 하신 말씀이 화합이다. 그렇게만 살면 되겠다 싶었다.”
쇠를 만드는 대장간과 용광로에 비할 수행이라면 얼마만한 정진력일까. 실로 범부의 깜냥으로는 헤아리기 쉽지 않다. 취재를 이끈 전국비구니회 교무부장 일법스님께서 웃음 섞어서 어떻게 해야 중노릇 잘할 수 있겠는지 여쭙자, 스님은 역시 웃음으로 대답하셨다.
“스님들이 자비심이 있어 비구니회를 위해 복 짓고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그렇게 하면 되지요.”
큰스님을 친견한다는 것이 큰 복임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수행의 윗자리에 계신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씀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석남사 정수선원은 수행가풍이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12시간을 정진해야 하고 안거 한 달은 가행정진, 막바지에는 잠을 일체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해야 한다. 안거만이 아니라 석남사는 행자과정도 1년을 채운다. 또한 석남사 가풍의 하나는 누구도 새벽예불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새벽예불을 거르면 밥을 굶어야 하는 것은 인홍스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새벽예불 때마다 스님들은 108배를 올리며 참회기도를 하고, 예불을 마친 수좌들은 곧바로 참선에 들어 하루 공부를 시작한다. 이렇듯 가풍이 성성하게 살아 있기에 석남사를 거쳐 간 스님들은 어디를 가든지 ‘중노릇 잘한다.’는 평을 듣는다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스님들과 젊은 스님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석남사 스님들의 모습에는 은근한 정겨움이 스며 있다.
선원장 스님께서 요즘 소임을 살지 않으려는 풍토로 고생하는 주지스님과 삼직스님들의 고충에 대해 걱정하자, 주지 도각스님은 오히려 어른 스님들이 계셔서 계통이 세워지고 쉽게 풀리는 일이 많다고 공을 돌리신다. 그 가운데 주지스님의 한 말씀이 가슴에 닿는다.
“천년 고찰임에도 아무 탈 없이 사는 게 정말 행운입니다. 일곱 분 어른 스님이 계시는데 그분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대중을 움직이면서 전혀 고집이 없으세요. 얼마나 자기를 깎고 다듬어 왔겠는가, 정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정진력이 아니면 안 됩니다.”

석남사에는 역사가 살아 있다. 지금부터 천이백여 년 전 신라 헌덕왕 16년(824)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창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 후 1674년과 1912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그 맥을 이어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께서 주지를 맡은 이후 각 당우를 일신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비단 당우만이 아니라 엄격한 수행가풍으로 국내 최대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자리를 잡았다. 석남사에 비구니 참선도량이 생긴 것이 바로 57년. 주지 인홍스님이 정수선원을 신축해 비구니선원을 열면서부터다.
이후 63년부터는 3년을 기한으로 수행정진 하는 ‘3년 결사’를 시행했고, 참선공부가 익은 납자들을 위해 심검당을 신축했다. 95년에는 태고종 소속으로 있던 동인암을 편입시켜 금당선원을 세웠다.
이렇게 그릇을 만든 석남사는 갓 선방에 들어온 신참에서부터 선방 경력이 오래된 구참이나 연로한 스님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일을 분담하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가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석남사에는 역사가 살아 있다. 굳이 이것이 전통이고, 이것이 가풍이라고 설명할 필요 없이 역사 속에서 지켜온 정신과 생활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에 99년에는 종단으로부터 비구니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의 석남사를 이루었다.
이러한 석남사 도량에서 느껴지는 덕목은 단연 중도의 도리이다. 옛것과 새것이, 규율과 자율이, 수행과 전법이 이곳에서는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어디에 치우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지켜주는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무념스님께서 조용한 가운데 힘주어 말씀하신바 “용광로 안에 산다고 생각한다.”는 생활자세. 그렇다면 중도란 이것과 저것의 단순한 중간이 아니라 용광로 안과 같은 치열함 속에서야 열매 맺을 수 있는 수행의 결실이라는 얘기가 성립된다. 그렇게 살펴보고 나면 이 석남사 도량이 주는 여유로움과 단아함, 어찌 보면 단조로움에 가까운 단출함이 예사로 볼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늦은 시간까지 무념스님께서는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일정을 핑계 삼아 해거름에 당도하여 제 볼일만 보고 떠나려는 속없는 일행을 침계루 앞까지 배웅하며 다독여 주신다. 고향집을 찾아왔다가 늦은 시간 상경하려는 자손을 걱정하는 모습 그대로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결코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이렇게 다독여주는 손길, 따스한 음성… 산중 깊숙이 찾아들어 발견한 보석은 바로 손 안에 잡히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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