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Ⅰ] 전국 비구니 선원 탐방
[불기2534(2006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4:11
조회
2121
[기획특집Ⅰ] 전국 비구니 선원 탐방
지장암 기린선원
월정사 뒤편에서 오대천을 건너면 깔끔하게 단장한 지장암이 나온다. 본전(本殿)격인 지장전을 마주보고 왼쪽이 기린선원(麒麟禪院)이다. 점심시간을 막 넘겨 찾아간 지장암은 고요 그 자체였다. 암자 초입에 자리한 밭에는 스님 몇 분이 울력 중이었다. 휴일을 맞아 찾지 못한 듯 경내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안 있어 안 사실이지만 비구니 스님들 선원의 오후 정진 시간은 비구 스님들보다 1시간 빨랐다. 시간은 한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지장암은 남대(南臺)라고 불린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5만보살이 거주한다는 오대신앙이 만들어낸 한국 산앙신앙의 발원지. 오대(五臺)란 동 · 서 · 남 · 북 · 중앙 다섯 곳을 말한다. 즉 동대 관음암, 서대 역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상두암, 중대 사자암이 그 곳이다.
이곳에는 각각 일만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과 오백나한 그리고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 한다고 믿고 있다. 그 중에서고 지장암 기린선원은 현재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당시 월정사 창건과 함께 시작된 지장암은 1930년대 예산 수덕사 견성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과 거의 동시에 비구니 선방을 열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갖춘 선원이다. 오대산이 불 탈 때에도 끝내 미동도 않은 채 상원사를 화마에서 지켜낸, 당대 최고승 한암스님이 근대 지장암 기린선원의 뿌리를 이룬다.
1925년 49세에 봉은사 조실로 추대 받고 잠깐 머문 뒤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와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을 나서지 않았던 한우스님을 찾아온 두명의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1930년경 율로 · 해노 두 비구니 스님이 지장암에 머물면서 결제 해제 없이 3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에 들었다. 그 면만 보아도 기린선원이 한국 비구니 승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엿볼 수 있다. 그 첫 손은 만공스님, 한암스님, 석우스님 등 당대 최고승들이 모두 그 정진력을 인정했던 본공스님이다. 본공스님은 만공스님 회상에서 정진하다 1937년 한암스님을 친견한 뒤 지장암에서 입승을 살며 선원의 면모를 더욱 일신했다.
비구님 종립특별선원 석남사를 중장한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 인홍스님도 이 곳 지장암에서 출가했다. 1941년 비구니 선원으로 한창 명성을 떨칠 때였다. 인홍스님은 이 곳에서 정자 노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로 우뚝 섰다. 당시 지장암 선원은 본공스님이 입승, 인홍스님이 원주를 살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당시 사정은 너무 어려워 한 처 날 때마다 선객들이 가져오는 쌀 여섯말과 보살이 가져오는 쌀 아홉말로 결제철을 보냈다고 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활발발(活發發)하던 선원은 한국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선객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 뒤 성진(性眞 · 成眞)스님과 혜종(惠宗)스님에 의해 30여 년에 걸친 불사 끝에 지장암은 다시 일어나고 선원도 새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1975년 현 지장암( 地藏庵) 인법당에서 하안거 방부를 받아 정진을 했다. 정진실의 협소함을 해결하기 위해 1994년 법당 촤측 앞에 지층을 겸한 90평 규모로 혜종스님에 의해 신축된 선원은 1997년 현 선원에서 하안거 방부를 받고 기린선원이란 이름으로 개원되었다.
선원은 1996년 당시 월정사 주지 현해스님이 지은 '기린선원' 현판이 걸리고 1997년 하안거 때부터 방부를 들이면서 참선 정진 도량으로 거듭났다. 3년 후 정안스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감원(주지)의 소임을 맡아 살아야만 했다. 지장암에 다시 온 정안스님은 인법당 규모이던 법당을 기둥만 두고 해체 복원하여 넓이고, 비가 새서 비닐을 덮어놓은 요사를 뜯어내고 선방을 마주보고 연건평 250평 규모로 식당과 요사채를 마련했다. 부임 첫해 겨울부터 선원은 동안거를 개원했다. 몇년간 동안거에 전기요금을 제때에 못 내서 사월 팔일 행사 수입으로 충당하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중 형편도 많이 나졌다고 한다.
1999년 정안스님이 비구니 북방선원 최초로 동안거 방부를 들이는 등 새 역사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다. 선원총람에 지장암 역사가 잘못 기록되어 이를 바로잡느라 애를 먹었는가 하면 송사에 휘말리는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10년에 걸쳐 성공리에 천진암 불사를 끝낸 저에게 그 같은 시련이 없었다면 제잘났다고 교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 덕분에 하심을 배워 지금은 동 · 하안거에 많은 대중과 함께 살고 있으나 의견과 행이 부짖쳐 고생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대중스님 덕분에 산중과 사중이 더욱 풍성하고 넉넉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오후 첫 정진시간이 끝났다. 선원 뒤편으로 난 전나무 숲길을 안행(雁行, 스님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기러기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인 말)을 한 스님들이 힘차게 걸었다. 포행시간이다. 죽비를 든 입승스님이 앞서고 그 뒤로 30여 명의 선객들이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좌복 위에 앉아 가부좌 튼 스님들은 가끔 볼 기회가 있었지만 포행을 이렇게 '조직적'으로 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힘차게 걷는 것은 오랜 시간 좌복 위에 앉아 굳어진 무릎 관절을 풀기 위해서다. 정해진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전통을 잘 보존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생활이 쉬는 시간 하나에도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기자의 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린선원 가풍이 어떤지는 이 하나만으로도 족했다.
선방에서 화두와 씨름하는 동안 총무, 원주, 별좌, 행자, 신도 등 살림을 책임진 스님들은 잡초가 우거진 밭을 메느라 뙤약볕과 씨름 중이었다. 경작하는 밭은 1000여 평. 고추, 들깨, 도라지, 콩, 호박, 가지, 아욱 등 지장암 대중들의 먹거리를 직접 경작한다. 삭발일 전날 선원대중들도 함께 일손을 보태고 외호 대중들 또한 틈틈이 가부좌를 튼다. 농사 공부, 화두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지장암 스님들은 몸소 보여준다.
이번 하안거도 구참 30여명이 방부를 들였다. 정안스님도 사중일을 마치면 빠지고 않고 정진에 참여한다. 92세 된 비구니 법화스님은 대중방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기린선원을 마주보고 가부좌를 한다. 노 비구니 스님 뒤로 한암대종사(漢巖大宗師)의 승가오칙(僧家五則) 선(禪), 간경(看經), 염불(念佛), 의식(儀式), 가람수호(伽藍守護)를 바탕으로 한 '기린선원청규'가 들어온다. "지대방에서는 묵언한다. 반살림 등산과 자유 정진능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포행은 지장암 입구 다리와 선원 산쪽 텃밭 중 부리 개울을 넘지 못한다. 안거중에 사무실, 월정사 및 산내 암자를 출입하지 못한다. TV 신문 잡지 등은 보지 못한다…."
한 여름 지장암 위를 비추던 해가 어느 덧 뉘엿뉘엿 넘어간다. 오후 정진시간도 끝난 듯하다. 경내를 거니는 밀짚모자 쓴 스님들이 흘러간 시간을 말해준다. 경내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남대 지장암에 고요히 앉아서
남대에 고요히 앉아 화로에 향 피우고
종일토록 응연하여 일만 번뇌 놓았네.
이는 마음 쉬어 망상 버릴 뿐 아니라.
도무지 모든 일들을 사랑할 것이 없네.
지장암 기린선원
월정사 뒤편에서 오대천을 건너면 깔끔하게 단장한 지장암이 나온다. 본전(本殿)격인 지장전을 마주보고 왼쪽이 기린선원(麒麟禪院)이다. 점심시간을 막 넘겨 찾아간 지장암은 고요 그 자체였다. 암자 초입에 자리한 밭에는 스님 몇 분이 울력 중이었다. 휴일을 맞아 찾지 못한 듯 경내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안 있어 안 사실이지만 비구니 스님들 선원의 오후 정진 시간은 비구 스님들보다 1시간 빨랐다. 시간은 한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지장암은 남대(南臺)라고 불린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5만보살이 거주한다는 오대신앙이 만들어낸 한국 산앙신앙의 발원지. 오대(五臺)란 동 · 서 · 남 · 북 · 중앙 다섯 곳을 말한다. 즉 동대 관음암, 서대 역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상두암, 중대 사자암이 그 곳이다.
이곳에는 각각 일만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과 오백나한 그리고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 한다고 믿고 있다. 그 중에서고 지장암 기린선원은 현재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당시 월정사 창건과 함께 시작된 지장암은 1930년대 예산 수덕사 견성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과 거의 동시에 비구니 선방을 열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갖춘 선원이다. 오대산이 불 탈 때에도 끝내 미동도 않은 채 상원사를 화마에서 지켜낸, 당대 최고승 한암스님이 근대 지장암 기린선원의 뿌리를 이룬다.
1925년 49세에 봉은사 조실로 추대 받고 잠깐 머문 뒤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와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을 나서지 않았던 한우스님을 찾아온 두명의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1930년경 율로 · 해노 두 비구니 스님이 지장암에 머물면서 결제 해제 없이 3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에 들었다. 그 면만 보아도 기린선원이 한국 비구니 승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엿볼 수 있다. 그 첫 손은 만공스님, 한암스님, 석우스님 등 당대 최고승들이 모두 그 정진력을 인정했던 본공스님이다. 본공스님은 만공스님 회상에서 정진하다 1937년 한암스님을 친견한 뒤 지장암에서 입승을 살며 선원의 면모를 더욱 일신했다.
비구님 종립특별선원 석남사를 중장한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 인홍스님도 이 곳 지장암에서 출가했다. 1941년 비구니 선원으로 한창 명성을 떨칠 때였다. 인홍스님은 이 곳에서 정자 노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로 우뚝 섰다. 당시 지장암 선원은 본공스님이 입승, 인홍스님이 원주를 살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당시 사정은 너무 어려워 한 처 날 때마다 선객들이 가져오는 쌀 여섯말과 보살이 가져오는 쌀 아홉말로 결제철을 보냈다고 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활발발(活發發)하던 선원은 한국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선객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 뒤 성진(性眞 · 成眞)스님과 혜종(惠宗)스님에 의해 30여 년에 걸친 불사 끝에 지장암은 다시 일어나고 선원도 새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1975년 현 지장암( 地藏庵) 인법당에서 하안거 방부를 받아 정진을 했다. 정진실의 협소함을 해결하기 위해 1994년 법당 촤측 앞에 지층을 겸한 90평 규모로 혜종스님에 의해 신축된 선원은 1997년 현 선원에서 하안거 방부를 받고 기린선원이란 이름으로 개원되었다.
선원은 1996년 당시 월정사 주지 현해스님이 지은 '기린선원' 현판이 걸리고 1997년 하안거 때부터 방부를 들이면서 참선 정진 도량으로 거듭났다. 3년 후 정안스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감원(주지)의 소임을 맡아 살아야만 했다. 지장암에 다시 온 정안스님은 인법당 규모이던 법당을 기둥만 두고 해체 복원하여 넓이고, 비가 새서 비닐을 덮어놓은 요사를 뜯어내고 선방을 마주보고 연건평 250평 규모로 식당과 요사채를 마련했다. 부임 첫해 겨울부터 선원은 동안거를 개원했다. 몇년간 동안거에 전기요금을 제때에 못 내서 사월 팔일 행사 수입으로 충당하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중 형편도 많이 나졌다고 한다.
1999년 정안스님이 비구니 북방선원 최초로 동안거 방부를 들이는 등 새 역사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다. 선원총람에 지장암 역사가 잘못 기록되어 이를 바로잡느라 애를 먹었는가 하면 송사에 휘말리는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10년에 걸쳐 성공리에 천진암 불사를 끝낸 저에게 그 같은 시련이 없었다면 제잘났다고 교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 덕분에 하심을 배워 지금은 동 · 하안거에 많은 대중과 함께 살고 있으나 의견과 행이 부짖쳐 고생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대중스님 덕분에 산중과 사중이 더욱 풍성하고 넉넉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오후 첫 정진시간이 끝났다. 선원 뒤편으로 난 전나무 숲길을 안행(雁行, 스님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기러기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인 말)을 한 스님들이 힘차게 걸었다. 포행시간이다. 죽비를 든 입승스님이 앞서고 그 뒤로 30여 명의 선객들이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좌복 위에 앉아 가부좌 튼 스님들은 가끔 볼 기회가 있었지만 포행을 이렇게 '조직적'으로 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힘차게 걷는 것은 오랜 시간 좌복 위에 앉아 굳어진 무릎 관절을 풀기 위해서다. 정해진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전통을 잘 보존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생활이 쉬는 시간 하나에도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기자의 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린선원 가풍이 어떤지는 이 하나만으로도 족했다.
선방에서 화두와 씨름하는 동안 총무, 원주, 별좌, 행자, 신도 등 살림을 책임진 스님들은 잡초가 우거진 밭을 메느라 뙤약볕과 씨름 중이었다. 경작하는 밭은 1000여 평. 고추, 들깨, 도라지, 콩, 호박, 가지, 아욱 등 지장암 대중들의 먹거리를 직접 경작한다. 삭발일 전날 선원대중들도 함께 일손을 보태고 외호 대중들 또한 틈틈이 가부좌를 튼다. 농사 공부, 화두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지장암 스님들은 몸소 보여준다.
이번 하안거도 구참 30여명이 방부를 들였다. 정안스님도 사중일을 마치면 빠지고 않고 정진에 참여한다. 92세 된 비구니 법화스님은 대중방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기린선원을 마주보고 가부좌를 한다. 노 비구니 스님 뒤로 한암대종사(漢巖大宗師)의 승가오칙(僧家五則) 선(禪), 간경(看經), 염불(念佛), 의식(儀式), 가람수호(伽藍守護)를 바탕으로 한 '기린선원청규'가 들어온다. "지대방에서는 묵언한다. 반살림 등산과 자유 정진능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포행은 지장암 입구 다리와 선원 산쪽 텃밭 중 부리 개울을 넘지 못한다. 안거중에 사무실, 월정사 및 산내 암자를 출입하지 못한다. TV 신문 잡지 등은 보지 못한다…."
한 여름 지장암 위를 비추던 해가 어느 덧 뉘엿뉘엿 넘어간다. 오후 정진시간도 끝난 듯하다. 경내를 거니는 밀짚모자 쓴 스님들이 흘러간 시간을 말해준다. 경내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남대 지장암에 고요히 앉아서
남대에 고요히 앉아 화로에 향 피우고
종일토록 응연하여 일만 번뇌 놓았네.
이는 마음 쉬어 망상 버릴 뿐 아니라.
도무지 모든 일들을 사랑할 것이 없네.
전체 151
- 전체
- [불기2534(1990년)5월)
- [불기2534(1990년)6월)
- [불기2534(1990년)7월)
- [불기2534(1990년)8월)
- [불기2534(1991년)
- [불기2534(1993년)
- [불기2534(1996년)
- [불기2534(1997년)
- [불기2534(1998년)
- [불기2534(1999년)
- [불기2534(2000년)
- [불기2534(2001년)
- [불기2534(2002년)
- [불기2534(2006년)
- [불기2534(2007년)
- [불기2534(2008년)
- [불기2534(2009년)
- [불기2534(2010년)
- [불기2534(2012년)
- [불기2534(2014년)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 151 |
너는또다른나
성불
|
2026.04.15
|
추천 0
|
조회 40
|
성불 | 2026.04.15 | 0 | 40 |
| 150 |
[권두언] 지난 4년을 회고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89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389 |
| 149 |
[치사]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길 기대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17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317 |
| 148 |
[초대시Ⅰ] 석굴람 대불大佛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180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180 |
| 147 |
[시사컬럼] 전통사찰, 보존과 홀용의 해법 찾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85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385 |
| 146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①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990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990 |
| 145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② 대둔산 법계사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3264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3264 |
| 144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③ 법륜사 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22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822 |
| 143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④ 팔공산 백흥암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47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847 |
| 142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 _⑤ 승련사 승련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711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7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