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존자의 천려일실(千慮一失)

[불기2534(2002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4:04
조회
2003
가섭존자의 천려일실(千慮一失)
- 토라난타스님의 일침 -

리 영 자 | 동국대 명예교수



1700년의 한국불교사에서 볼 때 여성불교인 특히 그 핵심적 위치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더 뚜렷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돌이켜 보면 불교교단에 비구니 스님들이 대두된 것은 석가세존 당시의 초기교단 때부터이다. 세존의 의모인 마하파사파제, 고다미 황후는 초기 불교교단에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황후는 교단의 커다란 저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난(阿難)존자를 설득시켜 세존의 허락을 받고, 야쇼다라 공주와 많은 카비라성 귀족부인들과 함께 출가하게 된다.

석가세존 이후의 교단에서는 아난존자에게 여러 가지 질책을 한 것 중에서 여성출가를 세존께 종용한 것을 거론하고 있다. 부처님을 오랫동안 수행하였던 다문(多聞)제일의 아난존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같은 10대 제자로서 불멸 후에 교단의 지도자였던 마하가섭이 보낸 것이었다. 이 대가섭존자는 세존께서 성도하신 3년쯤 되는 때에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아 8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한 훌륭한 제자였다. 가섭존자는 교단의 장로로서 제일 가는 분이었으므로 흔히 '두타제일 가섭'이라고 호칭된다.

두타행에는 12가지가 있는데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완전히 버리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행법이다. 말하자면 소욕지족(小欲知足)을 생활목표로 하고 심한 고난의 생활을 일상사로 하는 불교적 수행법이다. 가섭존자는 교단의 인격을 갖춘 분으로서 불멸 후에는 부처님께서 여러 곳에서 설법하신 가르침을 편찬하기 위해 5백명의 수행자를 모아 편찬회의를 주재하기도 하였던 명실상부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저 유명한 '가섭의 미소'는 교단의 정통성이 가섭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석가세존께서 영축산 법좌에서 대법천황에게서 받은 연꽃을 가만히 들어 보이자 모든 대중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하가섭만이 파안대소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대가섭에게 부촉한다"라고 선포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염화시중(篩華示衆)의 미소에 관한 것이다. 대가섭존자는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보거나 선종의 사자상승의 전통설에서 보거나 교단의 지도자로 뛰어난 불제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가섭존자 이야기를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존자가 단지 불교교단 안의 비구니 스님들에게만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고루한 보수성향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섭존자가 비구니 교단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가섭존자가 교단의 지도자로서 비구니 스님들이 거처하는 정사를 방문하여 설법한 곳에서 일어났다. 가섭존자가 한참동안 설법을 하고 있던 중간에 어떤 스님의 직절적인 비난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가 바로 토라난타(吐羅難陀)라는 비구니 스님이었다.

"가섭장로님의 설법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바늘장사 아이가 바늘 만드는 기술자에게 바늘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들립니다." 바늘장사와 바늘 만드는 이의 관계란 말할 것도 없이 가섭존자가 바늘장사 아이요 법을 듣고 있던 비구니스님들이 바늘 만드는 기술자(針師)임을 비유한 것이다. 이때 그 자리에는 아난존자도 동석했다고 한다. 아난존자는 고다미 황후가 출가를 허락해 달라는 간청을 세 번 하였을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부처님께 여성출가를 허락할 것을 권한 것이 화근이 되어 부처님 입적 후 가섭존자의 비난을 받았다고 여러 기록에 전하고 있다. 그런데 아난존자에 대한 비난이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가섭존자는 후에 법을 아난존자에게 부촉하고 자신은 계족산에서 선정에 들어갔다고 전하고 있다. 바늘장사 아이와 바늘 만드는 사람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에피소드 같은 것이 나올 수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법을 아난존자에게 부촉한 가섭존자가 아난존자를 비난하는 대표로 꼽히는 것도 좀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다. 이 일련의 설화들은 비구니 스님들이 출가하는 교단의 관습은 인도라는 전통적 사회에서는 상당한 거부반응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불교의 만민평등주의적 이념이 계급적인 인도사회의 혁신사상으로 대두하기에는 상당히 격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부라만 계급출신이 상당히 많았던 불교교단의 내부 구성으로 볼 때 혁신적인 사고는 안이하게 이해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구니들의 출가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비구니교단'이라는 공동체가 이룩되고 따라서 많은 계율의 제약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예컨대 8경법(八敬法) 같은 것도 교단이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제정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8경법이 부처님 생존시에 제정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다미 비구니가 세속적으로는 석가세존의 어머니이긴 하였지만 출가 교단 질서에서 볼 때에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므로 당연히 스승에게 예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자 관계이면서도 거꾸로 사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두 분의 사정이 반영되어 후에 이것이 '출가한지 오래된 여성도 오늘 출가한 비구에게 예경하라'는 조목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출가교단의 질서는 이미 육친 관계가 아니라 불법에 의한 사제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예화로 들었던 토라난타 비구니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장로로 대표되는 가섭존자의 법문에 대한 단순한 질책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선정을 닦으러 계족산으로 들어갔다는 가섭존자에 대한 힐난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마도 모든 비구교단에게 복종을 강요받은 비구니교단의 저항이 이런 우화를 통해 항변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개중에는 훌륭한 토라난타 같은 수행자도 많이 있었을 것이지만 세계 종교사에 볼 때 불교 비구니교단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이한 일이다. 남녀평등의 시각이 뚜렷한 불교교단이 인도의 가부장적인 부라만 사회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존속해가느냐 하는 과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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