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香蓮心/에세이] 나의 인생 나의 불교

[불기2534(1993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1:17
조회
1945
[淸香蓮心/에세이] 나의 인생 나의 불교

조흥식/문학박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요즘은 나는 한가하고 조용히 지낼 수가 있어서 좋다.

별 볼일 없는 나이라서 아무도 오라 가라 하지 않는다. 또 신통한 일도 없을테니 남이 장에 간다고 따라 나설 필요도 없다.

이래저래 무엇에도 매이지 않게 되어 나 좋을 대로 살 수가 있다. 세상 반연과 멀러진다는 것, 이것도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삶이 더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가하면 가끔 생각나는 일들 중의 하나는 묘향산 꼭대기의 그 조그마한 암자를 내 생애 중에 다시 한번 가볼 수 있을지.

눈발이 날리던 어느 초겨울날 관음봉(觀音峯) 앞에서 주지스님과 작별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던 기억이 유난히 생생하다. 기도를 회향하고 돌아가는 보살 한 분과 하산 길을 동행하였다. 무슨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주고 받았는지 보현사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이니건만 중간에 상원사를 거쳐 단숨에 내려왔다.

기차를 타고 동용굴까지 지나오면서도 법왕대(法王臺)에서 지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 속에서 몇 차례고 거듭되었다.

때는 일본군들이 중국 본토에서 기승을 부리던 그 무렵. 나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후반이었다.

그 때만 해도 어머니를 따라 먼발치에서 넘겨보기만 하던 불교를 성큼 다가서서 껴안아 볼 기회를 가졌다.

나는 주지스님과의 자별한 인연으로 그곳에서 삼칠일간 관음기도를 마쳤다. 기도회향이 끝나고도 돌아 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한 철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초라한 암자에 상주 대중이 있을 리도 없고, 또 예나 지금이나 장사가 안되는 가난한 절집에 사미승인들 붙어 있을 리가 없다.

조석예불에서 사시마지까지, 공양주에서 부목까지 주지스님혼자서 해냈다. 그 덕에 나는 머리를 깎지 않고도 절밥 신세를 지는데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도울 일이 많았다. 아궁이에 불지피고 국끊이고 밥짓고 게다가 설거지는 도맡아 하였다. 객지스님에게 차 올리는 일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날을 잡아 빨래도 하고 틈이나면 채마밭 울력도 거들었다.

수덕사에서 오신 노장 한 분을 모시고, 남녀 기도객을 합해서 대 여섯 명의 단촐한 식구였다.v 그래서 일이 벅차지는 않았지만 하룻밤 세끼 마련하기도 분주다사 하였다.

낮잠은 원래 절 집에서는 금물이지만 한가하게 졸고 있을 틈도 별로 없었다. 2,000미터나 되는 워낙 높은 곳이라서 삼복에도 모기에 시달릴 그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면 귀찮게 찾아드는 불청객, 이것만은 딱 질색이었다. 이때만 해도 절간하면 빈대가 연상되었다. 그토록 빈대는 절집의 속성처럼 여겨졌다.

얼마나 지긋지긋 했길래 화재가 나면 스님들은 손재에 대한 걱정보다 타죽는 빈대가 더 고소했을까.

빈대란 놈은 게릴라처럼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자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간혹 오수를 즐기는 분이 없지만 대개는 전날밤에 이 게릴라에게 몹시 당했거나 아니면 오늘밤 그 준동(蠢動)에 대비해서 이 소강상태를 이용, 한 잠 자두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서산스님은 일찍이 4대 명산 중에 묘향산을 제일로 꼽았다. 금강산은 빼어난 산이긴 하지만 웅장하지는 못하며〔金剛山 秀而不壯〕, 지리산은 강하긴 하지만 아름답지가 못하고〔智異山 壯而不秀〕, 구월산은 장하지도 못할뿐더러 뛰어나지도 못한데〔九月山 不壯不秀〕, 묘향산만은 웅장하기도 하고 뛰어나기도 하다〔妙香山 亦壯亦秀〕하여 당신이 여기 머물러 스스로 법호를 서산(西山)이라 하였다.

특히 법왕대는 서산대사께서 주석(駐錫)하던 사암으로 유명하여 겨울철을 빼놓고는 성지를 순례하는 참배객들의 왕래가 드물지 않았다. 대개는 그 길로 상원사나 큰 절로 돌아가지만, 올라오고 내려가기에 발걸음이 무거운 노스님들은 비록 비좁고 불편한 처소이긴 하지만 하룻밤쯤 걸망을 풀어놓기도 하였다.

차를 달여 올리면 스님들이 나에게 먼저 말씀을 건네었다. 어디서 왔으며, 나이는 얼마나 되느냐 등 스님들로서는 머리도 깎지 않고 누더기를 두른 거기에 더 호기심이 갔는지도 모른다. 어떤 스님은 자청하여 몇 마디 법문도 일러주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유명한 스님들의 일화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법천(法泉) 노스님께선 나보다도 먼저 와 계셨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그 스님께 물었다. 하나도 막힘 없이 자상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대답해 주셨다. 박식한 점으로 미루어 선(禪)보다는 교(敎)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그리고 오전에 설거지가 끝나고 나서 초발심자경문을 매일 한차례씩 이 스님에게 매울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이때부터 절의 법도와 행자로서의 예법을 알게 되니, 이 앞서의 나의 거칠은 몸가짐이 새삼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토록 묘향산에 들기 전과 후가 하늘과 땅처럼 판이하였다.

이제는 물긷고 밥짓는 행위하나 하나에도 의미가 있어 보였고, 옷매무시나 걸음걸이 거기에도 뜻이 없지 않은 듯 싶었다.

삶을 떠나서 배우고 구할 것이 따로 있을까. 어째서 우리는 저 먹을 밥을 하나 못 끊이면서 남에게 평생 동안 의존해 살아갈까. 삶의 기초를 다지는 일, 이것이 응당 정신적 물질적으로 교육의 기초가 됨직한데 이때의 한 철이 나에게는 부처님과 인연을 깊이 다지는 전기(轉機)가 되었다.

묘향산으로 출발 전야, 내 딴에는 몹시 괴로웠다. 몸도 괴롭고 마음도 무거웠다. 의지할 곳도 구해 줄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다. 부모형제도 일가친척도, 공부마저도 놓아버려야 했다. 보현사에 있는 그 스님 오직 한 분. 암자의 그 주지스님에게 달려갔다.

만포선 열차는 청천(淸川)강을 따라 갔다. 맑은 강물 밑에 하얀 모래는 손을 짚으면 만져질 듯했다. 이름 그대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복중 염천(炎天)이었다. 시원한 강물을 한껏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가슴이 풀릴 것도 같았다. 겨울이 지나거든 다시 산으로 들어가리라. 마음의 다짐은 봄눈과 더불어 녹아서 흘러갔다.

그로부터 이제 반세기가 지났다. 지나고 보니, 바삐 돌아가던 직장생활의 한 세대(世代)가 한 마당 봄꿈같이 사라졌다. 너무도 덧없이 살았구나!

묘향산에서 얻은 그 씨는 아직도 살아있다. 이 소중한 씨가 내게는 있으니까….
전체 15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51
너는또다른나
성불 | 2026.04.15 | 추천 0 | 조회 36
성불 2026.04.15 0 36
150
[권두언] 지난 4년을 회고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86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386
149
[치사]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길 기대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14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314
148
[초대시Ⅰ] 석굴람 대불大佛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177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177
147
[시사컬럼] 전통사찰, 보존과 홀용의 해법 찾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82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382
146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①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986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986
145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② 대둔산 법계사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3261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3261
144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③ 법륜사 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19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819
143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④ 팔공산 백흥암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44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844
142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 _⑤ 승련사 승련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708
전국비구니회 2018.06.22 0 2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