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특집 여래(如來)탄생의 사회적 의미
[불기2534(1990년)5월)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0:30
조회
1537
[부처님오신날 특집]여래(如來)탄생의 사회적 의미
석도완/안성 석남사 스님
Ⅰ. 어리석은 물음이 될는지 모르지만 불타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그러나 불교에 미쳐서 한 생을 살려고 작심하고, 그렇게 인생의 가을을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에겐 왜 그런지 파도에 지워지면 또 쌓는 모래탑과 같은 여운을 남기는 질문이다. 특히 교단이 시끄럽거나 불교계의 많은 문제들이 나마처럼 뒤엉켜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을 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더욱, 왜 불교가 생겨나서 내 자신 이렇게 방황하는가 되묻게 된다.
우리들의 의문은 진리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자 구체적으로 진리를 자기화하려는 노력이다. 초파일이나 불교의 전통행사를 보면서 그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진리를 자기회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가 '왜 이 사회 인간들에게 있어야만 하는가'하는 의문도 끝없는 진리의 추구이자 자기체화(自己體化)의 노력이며 자기정화의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 불타의 일생과 경전의 말씀을 통해 의문에 대한 편의적 해답을 제시해 보려한다.
부처가 부처이게 된 것은 보리수 아래서 완성된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당신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리라 생각되는 단 한사람의 중생이라도 구제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힌두이즘에서 최고의 신으로 숭상되고 있던 범천(deva)이 3번이나 간결하게 청하여 전도(傳道)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상징적 모사에서 우리는 부처가 부처일 수 있게 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 실존인물로 판명된 고타마·싯달타가 만일 그가 깨달은 세게나 진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거나 단지 책 몇 권으로 밝히고 말았다면 그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철학자나 사상가 또는 종교가로 남고 말았을 것이며, 그 이상의 의미는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을 내려와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할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진리를 설파하리라고 선언한 그분의 교사적 행동 속에서 우린 부처님의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말라야 산을 내려와 전도를 했다하더라도 역사상 수많은 인물이 그와 같은 전철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고타마·싯달타만이 진리의 빛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비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이 설파한 가르침의 내용과 실천의지를 통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고타마·싯달타는 히말라야 산을 내려오다 만난 이교도 우빠카(upaka)에게 자신을 '불사(不死)의 북을 치기'위해 바라나시로 간다고 가르치며, 눈 어둔 중생을 위해 '단이슬과 같은 진리의 북'을 치러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북' '단이슬과 같은 지리의 북'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이 상징성에 대해 나는 두 가지로 말하고 싶다. 첫째는 자기를 정화하는 작업이다. 자기를 정화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4제, 8정도 등 37조 도품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연기적인 자연현상을 인식하고 살라는 것이다. 연기란 전문적인 불교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며,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되어있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공동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의 정화(淨化)가 전체의 정화를 이끌러 내는 발판이 되며, 전체의 정화가 개인의 행복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사회에서 자기정화나 연기를 인식하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 그것은 오직 대타적으로 사랑·화합·자유·평등·겸손 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체적 실례를 우리들은 초기 전도선언문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그리고 세상에서 구하는 이익과 안락을 위해 가도록 하라. 다른 마음로 갈 때 두 사람이 한 곳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대들은 많은 사람을 어여삐 여기고 포용하여 이치에 맞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법하라."
이상의 인용문에 보이듯 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에 부처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다는 생각도 없이 행한 그런 행위가 바로 우리들의 기쁨이요, 행복이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공동생활의 안녕을 도모하고 개인간의 사랑과 믿음을 유지시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Ⅱ. 불타가 내게 필요한 이유는 사랑과 신뢰를 통해 우리 모두의 행복을 보장해 주며, 이타적(利他的)삶을 통해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북'을 비유하여 강조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더구나 영원히 죽지 않는 진리가 단순히 사랑과 믿음뿐이라는 사실만으로 현대처럼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제공할 것인가. 어지러운 생활과 복잡한 것을 기피하는 현대인,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향락주의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에게 불타의 탄생과 죽음은 무슨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을까. 「열반경」에서 부처님의 생사(生死)는 모두 방편이라 말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타의 태어남을 방편이라 하는 것은 보살의 모습으로 인간세계를 최상의 이상세계로 만들려고 노려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성불할 수 있고,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 생각하면 살아가는데 있어 자칫 빠지기 쉬운 허무주의, 향락주의를 경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왜 방편일까. 누구나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연법칙 속에서 죽음이 바로 보살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닐까. 어차피 죽을텐데 하는 죽음이 지닌 자학, 포기 등의 어둔 그림자를 지우고, 초연하며 해맑은 인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라고 하겠다. 삶과 죽음이 모두 아름다운 사회-즉 폭력, 불신, 모함이 사라지고 이해·사랑·화합·자유·평등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주역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살인 것이며, 보살이 되기 위해 삶과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는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 청정케 하고자 출현하느리라.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示)고자 출현하느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에 들게(入)하고자 세상에 출현하느니라"(법화경) 란 구절은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부처가 중생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화려한 것이 보살이라면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개(開)·시(示)·오(悟)·입(入) 시키는 작업은 바로 보살의 임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의 지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유·평등·박애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정토의 건설이라 생각한다.
이제 부처의 출현이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성취하는데 있으며, 부처의 생사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수단이라 볼 것 같으면 누구나 부처인자 보살의 가능성을 지닌 우리 불교도 아니 전 인류는 지상에 자유·평등·사랑이 넘치는 최대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리라 본다. 물론 그때 비로소 불타가 참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인간 고타마·싯달타가 40여년간 전 인도를 맨발로 걸었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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