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①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불기2534(2007년)
작성자
전국비구니회
작성일
2018-06-22 14:21
조회
3092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올연히 앉아 있는 자재로운 나그네!
생사 꿈을 깨고서 원적한 그 모습
비바람 종일토록 휘몰아치는데
원적한 그 경지가 부처의 경지일세.
---- 화산당 수옥
한 여름 푸르름이 온 천지에 가득한 날을 택해 선문의 도를 찾아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을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고속도로에 내리는 비는 마치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이의 답답함으로 밀려 들어왔다. 천성산 근처에 오니 종일토록 내리던 비는 언젠가부터 그쳐있었고, 출발할 때처럼 맑고 아름다운 청량한 날씨로 변해 있었다.
천성산 내원사.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영취산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 왼쪽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성산 내원사가 마주보며 한국불교의 선풍禪風을 드날리고 있다. 천성산은 중국에서 원효를 찾아온 천명의 스님들을 화엄경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지금도 그 기운이 넘쳐나는 것 같다. 천성산 입구에서 내원사로 이르는 길에 접어들자 수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송들이 푸른 정기를 내뿜으며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들과 어우러져 산을 더욱 빛나게 한다. 6km에 이르는 아름다운 계곡이 내원사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의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부른다고 했다.
날이 저물어 내원사에 도착하자 주지 승혜스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니 산사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객의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죽림원에 걸망을 풀고 나니 밤은 점점 깊어가고 마주 올려다 보이는 선방에는 밤이 늦도록 정진하는 모습에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건만 어느새 새벽 도량석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침예불을 하기 위해 올라간 법당은 그 현판이 선나원禪那院이다. 원래 선원이었다가 바뀌었지만 오히려 수선도량의 법당답다. 선나원 벽에 걸린 달마도엔 內院禪院 勇猛精進大衆 正法門中 信心堅固 確徹大悟 廣度衆生 一念未生前 消息如何가 신선한 새벽공기와 함께 폐부를 찌르고 들어온다. 선해일륜 禪海一輪 당호가 붙은 선원에는 35분의 대중스님들이 확철대오를 바라보며 照顧話頭하고 있다. 35분 중에 승납 2-7년차 스님들이 60%되니 선원의 혈기가 숫자상으로 활발해 보인다. 본방대중까지 합치면 50(40)여분의 스님들이 입승 靜慧스님과 주지 勝慧스님을 모시고 정진하고 있다. 선원의 내규로 자가용 입방금지와 핸드폰 사용금지가 눈에 띄고, 정진대중의 수행을 돕기 위해 제방 큰스님들의 육성테잎을 보름마다 한 번씩 듣는다고 한다. 세월따라 선원의 내규도 바뀌어서 아쉬운 것은 선지식이 드믄 세상이라, 선문을 단련시켜주실 큰스님들과 소통이 되는 언어가 아닌 일방통행의 언어를 들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포살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도사로 가는 것을 제외하고 산문출입은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겨울엔 한 달 간의 가행정진과 용맹정진을 하고 여름엔 한 달 가행정진만 하고 있다고 했다. 대중스님들의 건강관리는 부족함이 없도록 외호에 힘쓰고 있으며 담당한의사가 있어서 스님들을 관리하고 있다.
입승스님은 후생복지차원으로 수좌 50여분의 통일가사를 주지스님께서 보시하셔서 그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며 수좌들의 가사는 총무원에서 재가자의 보시를 받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조심스럽게 하신다.
두 분 스님께 교무부장이신 일법스님이 선원의 가풍을 여쭈니, 주지스님은 조용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이곳은 천성이 나신 곳입니다. 수좌스님들이 이곳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정진하셔야 합니다. 내원사 큰방은 정진 중에 반드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화두가 들려져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 잠에서 깰 때조차 화두가 들려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나 이 때 환희심이 나면 화두가 깨집니다. 그러나 한 번 맛본 경계는 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좌들은 경전을 통해 항시 깨달음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해제 전에 원각경을 강의할 예정입니다.” 하시니, 곁에서 입승스님이 한 말씀 덧붙이시길,
“수좌가 앉으면 큰 방 분위기가 부담 없이 선객에 딱 맞는다는 느낌이 옵니다. 제방에 이런 느낌을 주는 선방은 흔치 않습니다. 모두가 수좌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주지스님께서 들려주시는 수행에 관한 말씀이 구수하니 재미있게 하셔서 대중들이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래도 주지 목소리가 선방에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수좌의 삼매정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느라고, 예전에 삼년결사하던 때엔 화두가 성성하여 잠이 안잤는데 마침 쇳송을 하니 그 소리가 얼마나 맑고 환상적이었는지 모든 스님네가 깜짝 놀랬지, 내원사 큰방은 정진중에 반드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나는 경험해서 압니다. ”
세분의 대화를 듣다보니 내원사는 처음부터 선과 교가 어우러진 도량이었고, 그 선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원사 창건설화는 <송고승전>에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천리안으로 당나라 산시 성에 있는 태화사에 법당이 붕괴될 것을 아시고 대법회를 위해 모였던 천명의 스님들을 구하기 위해 널빤지에 “海東元曉 擲板求衆”이라 써서 허공으로 날렸다. 태화사 법당 앞에 판자가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긴 천명의 대중이 나와 구경하는 사이 법당이 무너져 천명의 대중의 목숨을 구하니 그 때야 판자가 땅에 떨어져 그 글귀를 보고 중국인 스님들 천명은 신라의 원효를 찾아오게 된다. 원효가 이 많은 대중과 머물며 정진할 도량을 찾던 중, 원적선 산신령이 지금의 양산 용연리에 해당하는 중방리까지 마중 나와 대중아 머물기를 청하였다. 원효대사는 이곳에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중,하 내원암과 89암자를 창건하시어 천명의 대중을 정진할 수 있는 도량을 건립하였다. 원적산 정상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였다 하여 그 곳을 화엄벌이라고 하며 각 암자에 분산되어 있던 대중을 모이게 하기 위해 큰 북을 설치하고 집합북을 울렸다 하여 그곳을 현재 집북봉이라고 부른다. 천명의 대중 가운데 988명은 이곳에서 득도하고 후원소임을 맡았던 12명 중 8명은 대구 동화사에서 깨달아 팔공산이라 불리며, 나머지 4명은 문경 대승사에 가서 도를 이루었다 하여 사불산이라고 부른다니 실로 천명의 대중이 다 깨달음을 성취하여으니 원적산을 천성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조선시대 義天. 龍雲. 海嶺선사들이 차례로 중건하고 1898년 유성선사가 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대원사(來遠寺)에서 내원사(內院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 중 공비들이 방화로 사원이 전소되자 수옥스님이 55년에 주지로 취임, 비구니 선원을 짓기로 서원하시고 57년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59년 선방 선해일륜을 낙성함으로 동국제일선원이 개원되었다. 화산당 수옥스님은 묘리당 법희스님의 제자로 16세에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 득도하였으며, 금룡스님. 혜옥 스님과 더불어 한국비구니계 3대 강백이셨다. 오늘날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수옥스님에게서 강의를 듣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비구니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었다. 일본 유학 후에 강백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다시 견성암에서 7년간의 장좌불와 정진하고 견처를 얻었다.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강의하며 천성을 내신 곳인 내원사에 수옥스님으로 이르는 흐름은 불입문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
선을 참구하는 것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도는 언어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언어문자의 수단이 아니면 도를 펼 수 없고, 불법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학문이 아니면 법을 밝힐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학문만을 소중히 하고 버려서도 안 되겠지만, 참구만 애쓰고 학문을 폐해서도 안 된다. 근본을 밝히지 못했고 의단을 타파하지 못했으면 어떤 근기를 막론하고 애써 선을 참구해야 할 것이지만, 의단을 타파했거나 근본이 밝아졌으면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먼저 깨달음의 문을 열고, 그런 다음에 학업을 연마하여 근본과 외형이 있게 하고 덕과 학문이 있게 하여야 한다. - 禪門鍛鍊??, 磨治學業 제11.
천성산 내원사의 가풍은 이렇듯 선과 교가 함께 어우러져 천성이 나신 그 힘을 지닌 도량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수좌에게 이르러 꽃을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선경스님과 혜관스님이 정진할 때인 1977년 섣달 무렵, 향곡스님께서 내원사를 찾아 대중에게 일렀다.
“만문수가 여기 나타났으니 진문수를 찾아내라!”
‘만 문수 진 문수‘는 문수보살이 결제 3개월 동안 노래방 1개월, 술집 1개월, 기생집 1개월을 보내고 해제일 에 자자하러 나타나자, 가섭존자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종망치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우리 문하는 청정한 수행승들이 머무는 곳이라 그대처럼 행실이 어지러운 자를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문수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마구 나투어 순식간에 만 명의 문수보살로 자신을 나투었습니다. 이를 보고는 깜짝 놀란 문수에게 부처님께서 이르기를.
“가섭아, 저 만 문수가 일어났으니 저 가운데 진문수를 찾아서 쫒아 버릴 수 있겠느냐!”
“선경스님은 장삼입고 향곡스님께 “만 문수, 진 문수,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의 모든 노화상이 다 내 콧구멍으로 나왔습니다.”
“콧구멍이 어디 있는고?”
“본래 콧구멍은 없지만 어디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렇게 나왔습니다.”
“참 공부도 많이 하고 애도 많이 썼습니다. 이제 그만 노시고 젊은이들 탁마나 해주시오.”
혜관스님이 주장자를 획 집어던지자 문창살을 뚫고 나갔다.
“옳고 옳다!”
내원사는 원래 통도사 상선원이라 근대 선지식들이 이곳을 항상 거쳐 가기 때문에 이런 기백이 넘치는 일화가 무수히 많다. 그 넘치는 활발한 에너지로 인해 선방에서 은은한 방광이 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꾸준하게 정진 잘하는 도량으로 만들면 비구니 선사가 다시 나와 후학을 지도 할 것으로 모두 믿고 있다고 한다.
내원사 이렇게 선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찰이다 보니 재가신자를 위한 교육이나 법회는 주로 산내암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선원운영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주지스님을 비롯한 외호대중들의 원력으로 수좌들의 대중공양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좌는 언제나 일 없는 것이 선객의 자세이며 수좌의 최고 공양은 정진이라는 취지아래 대중공양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없이 정진에만 몰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항상 그들을 격려해주고 용기주고 힘을 주는 수좌천국을 만드는 것, 이것이 내원사 동국제일선원의 지향점이라고 아니겠냐며 웃으시는 모습이 천진불 같다.
선원 수행 중 세대차간의 문제와 화합에 관해 입승스님에게 물었다
“사실 전에는 세대 차이를 못 느꼈는데 8안거가 도입되면서 세대차를 느낍니다. 8안거는 수행을 위한 제도인데 본말이 바뀌어 주지소임이나 상좌를 두기 위한 자격요건으로만 여기고 선방에 오는 경우가 제일 힘듭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발심하고 정진하다보면 어느새 수좌가 되기 때문에 좋게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아, 그리고 좋은 점은 젊은 수좌가 많아졌어요.”
첫 철나러 오는데 나이도 많고 모시옷 입으면 최고의 수좌처럼 보이지만 지도하려는 선배입장이 받아들이지는 분위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갈무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지스님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일침을 놓으신다.
“자비심으로 중생구제 해야 하는데 그걸 해 줄 이가 없다면 큰일이죠. 서로 인욕하고 자비심으로 기다려 주고, 작은 일인 경우엔 차 한 잔 하며 대화로 풀어내야 합니다. 이제는 승려 한명이 재가자 천명을 상대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어요. 보배로운 존재로 길러내야 합니다. 교육을 철저히 해서 최고의 선각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선지식을 모시고 수행했던 납자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며 동시에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야 할 세상에서 우리들 자신이 살아야 할 방법과 후학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결정지어지고 있었다.
전국비구니회에 바라는 바를 물으니 다시 교육의 문제를 말씀하신다.
“전국의 비구니에게 가장 혜택이 가는 일은 교육밖에 없습니다. 제방에 선지식이 귀하니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자를 위한 교육이 연중행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강원과 대학의 학인에게는 대강백이, 제방의 선객들에겐 대선사께서 적극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경과 선에 해박하여 중생지도에 막힘이 없는 그런 수행자를 만들어내 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선객이라고 선원에서만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이들을 위해 선의 세계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선객은 경전에 대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깨달음의 언어를 만나 표현의 세계를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구니 제도가 단일화되어 정체성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 스님께 내원사 선원의 미래에 대해 묻자, 내원사는 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3년 결사를 시작한 이후 99년까지 6번째 회향을 하였단다. 다시 결행을 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강력한 리더의 부재와 결사대중외에 받기 어려운 점 등의 이유가 있어서 어려운 점이 안타깝고, 산중에 큰스님이 계셔서 마음 경계가 일어났을 때 대적해야 하는데 입승소임을 살면서 그 일을 감당 못할까 가장 걱정이 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법기를 알아보고 법기를 다스려줄 선지식에 대한 그들의 타는 목마름이 전해져 오니 속히 천성이 나신 이 도량에서 무르익은 도의 힘이 새로운 선지식을 출현하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하는 마음으로 선해일륜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합장했다.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올연히 앉아 있는 자재로운 나그네!
생사 꿈을 깨고서 원적한 그 모습
비바람 종일토록 휘몰아치는데
원적한 그 경지가 부처의 경지일세.
---- 화산당 수옥
한 여름 푸르름이 온 천지에 가득한 날을 택해 선문의 도를 찾아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을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고속도로에 내리는 비는 마치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이의 답답함으로 밀려 들어왔다. 천성산 근처에 오니 종일토록 내리던 비는 언젠가부터 그쳐있었고, 출발할 때처럼 맑고 아름다운 청량한 날씨로 변해 있었다.
천성산 내원사.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영취산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 왼쪽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성산 내원사가 마주보며 한국불교의 선풍禪風을 드날리고 있다. 천성산은 중국에서 원효를 찾아온 천명의 스님들을 화엄경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지금도 그 기운이 넘쳐나는 것 같다. 천성산 입구에서 내원사로 이르는 길에 접어들자 수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송들이 푸른 정기를 내뿜으며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들과 어우러져 산을 더욱 빛나게 한다. 6km에 이르는 아름다운 계곡이 내원사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의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부른다고 했다.
날이 저물어 내원사에 도착하자 주지 승혜스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니 산사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객의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죽림원에 걸망을 풀고 나니 밤은 점점 깊어가고 마주 올려다 보이는 선방에는 밤이 늦도록 정진하는 모습에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건만 어느새 새벽 도량석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침예불을 하기 위해 올라간 법당은 그 현판이 선나원禪那院이다. 원래 선원이었다가 바뀌었지만 오히려 수선도량의 법당답다. 선나원 벽에 걸린 달마도엔 內院禪院 勇猛精進大衆 正法門中 信心堅固 確徹大悟 廣度衆生 一念未生前 消息如何가 신선한 새벽공기와 함께 폐부를 찌르고 들어온다. 선해일륜 禪海一輪 당호가 붙은 선원에는 35분의 대중스님들이 확철대오를 바라보며 照顧話頭하고 있다. 35분 중에 승납 2-7년차 스님들이 60%되니 선원의 혈기가 숫자상으로 활발해 보인다. 본방대중까지 합치면 50(40)여분의 스님들이 입승 靜慧스님과 주지 勝慧스님을 모시고 정진하고 있다. 선원의 내규로 자가용 입방금지와 핸드폰 사용금지가 눈에 띄고, 정진대중의 수행을 돕기 위해 제방 큰스님들의 육성테잎을 보름마다 한 번씩 듣는다고 한다. 세월따라 선원의 내규도 바뀌어서 아쉬운 것은 선지식이 드믄 세상이라, 선문을 단련시켜주실 큰스님들과 소통이 되는 언어가 아닌 일방통행의 언어를 들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포살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도사로 가는 것을 제외하고 산문출입은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겨울엔 한 달 간의 가행정진과 용맹정진을 하고 여름엔 한 달 가행정진만 하고 있다고 했다. 대중스님들의 건강관리는 부족함이 없도록 외호에 힘쓰고 있으며 담당한의사가 있어서 스님들을 관리하고 있다.
입승스님은 후생복지차원으로 수좌 50여분의 통일가사를 주지스님께서 보시하셔서 그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며 수좌들의 가사는 총무원에서 재가자의 보시를 받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조심스럽게 하신다.
두 분 스님께 교무부장이신 일법스님이 선원의 가풍을 여쭈니, 주지스님은 조용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이곳은 천성이 나신 곳입니다. 수좌스님들이 이곳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정진하셔야 합니다. 내원사 큰방은 정진 중에 반드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화두가 들려져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 잠에서 깰 때조차 화두가 들려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나 이 때 환희심이 나면 화두가 깨집니다. 그러나 한 번 맛본 경계는 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좌들은 경전을 통해 항시 깨달음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해제 전에 원각경을 강의할 예정입니다.” 하시니, 곁에서 입승스님이 한 말씀 덧붙이시길,
“수좌가 앉으면 큰 방 분위기가 부담 없이 선객에 딱 맞는다는 느낌이 옵니다. 제방에 이런 느낌을 주는 선방은 흔치 않습니다. 모두가 수좌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주지스님께서 들려주시는 수행에 관한 말씀이 구수하니 재미있게 하셔서 대중들이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래도 주지 목소리가 선방에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수좌의 삼매정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느라고, 예전에 삼년결사하던 때엔 화두가 성성하여 잠이 안잤는데 마침 쇳송을 하니 그 소리가 얼마나 맑고 환상적이었는지 모든 스님네가 깜짝 놀랬지, 내원사 큰방은 정진중에 반드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나는 경험해서 압니다. ”
세분의 대화를 듣다보니 내원사는 처음부터 선과 교가 어우러진 도량이었고, 그 선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원사 창건설화는 <송고승전>에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천리안으로 당나라 산시 성에 있는 태화사에 법당이 붕괴될 것을 아시고 대법회를 위해 모였던 천명의 스님들을 구하기 위해 널빤지에 “海東元曉 擲板求衆”이라 써서 허공으로 날렸다. 태화사 법당 앞에 판자가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긴 천명의 대중이 나와 구경하는 사이 법당이 무너져 천명의 대중의 목숨을 구하니 그 때야 판자가 땅에 떨어져 그 글귀를 보고 중국인 스님들 천명은 신라의 원효를 찾아오게 된다. 원효가 이 많은 대중과 머물며 정진할 도량을 찾던 중, 원적선 산신령이 지금의 양산 용연리에 해당하는 중방리까지 마중 나와 대중아 머물기를 청하였다. 원효대사는 이곳에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중,하 내원암과 89암자를 창건하시어 천명의 대중을 정진할 수 있는 도량을 건립하였다. 원적산 정상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였다 하여 그 곳을 화엄벌이라고 하며 각 암자에 분산되어 있던 대중을 모이게 하기 위해 큰 북을 설치하고 집합북을 울렸다 하여 그곳을 현재 집북봉이라고 부른다. 천명의 대중 가운데 988명은 이곳에서 득도하고 후원소임을 맡았던 12명 중 8명은 대구 동화사에서 깨달아 팔공산이라 불리며, 나머지 4명은 문경 대승사에 가서 도를 이루었다 하여 사불산이라고 부른다니 실로 천명의 대중이 다 깨달음을 성취하여으니 원적산을 천성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조선시대 義天. 龍雲. 海嶺선사들이 차례로 중건하고 1898년 유성선사가 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대원사(來遠寺)에서 내원사(內院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 중 공비들이 방화로 사원이 전소되자 수옥스님이 55년에 주지로 취임, 비구니 선원을 짓기로 서원하시고 57년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59년 선방 선해일륜을 낙성함으로 동국제일선원이 개원되었다. 화산당 수옥스님은 묘리당 법희스님의 제자로 16세에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 득도하였으며, 금룡스님. 혜옥 스님과 더불어 한국비구니계 3대 강백이셨다. 오늘날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수옥스님에게서 강의를 듣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비구니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었다. 일본 유학 후에 강백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다시 견성암에서 7년간의 장좌불와 정진하고 견처를 얻었다.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강의하며 천성을 내신 곳인 내원사에 수옥스님으로 이르는 흐름은 불입문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
선을 참구하는 것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도는 언어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언어문자의 수단이 아니면 도를 펼 수 없고, 불법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학문이 아니면 법을 밝힐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학문만을 소중히 하고 버려서도 안 되겠지만, 참구만 애쓰고 학문을 폐해서도 안 된다. 근본을 밝히지 못했고 의단을 타파하지 못했으면 어떤 근기를 막론하고 애써 선을 참구해야 할 것이지만, 의단을 타파했거나 근본이 밝아졌으면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먼저 깨달음의 문을 열고, 그런 다음에 학업을 연마하여 근본과 외형이 있게 하고 덕과 학문이 있게 하여야 한다. - 禪門鍛鍊??, 磨治學業 제11.
천성산 내원사의 가풍은 이렇듯 선과 교가 함께 어우러져 천성이 나신 그 힘을 지닌 도량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수좌에게 이르러 꽃을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선경스님과 혜관스님이 정진할 때인 1977년 섣달 무렵, 향곡스님께서 내원사를 찾아 대중에게 일렀다.
“만문수가 여기 나타났으니 진문수를 찾아내라!”
‘만 문수 진 문수‘는 문수보살이 결제 3개월 동안 노래방 1개월, 술집 1개월, 기생집 1개월을 보내고 해제일 에 자자하러 나타나자, 가섭존자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종망치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우리 문하는 청정한 수행승들이 머무는 곳이라 그대처럼 행실이 어지러운 자를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문수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마구 나투어 순식간에 만 명의 문수보살로 자신을 나투었습니다. 이를 보고는 깜짝 놀란 문수에게 부처님께서 이르기를.
“가섭아, 저 만 문수가 일어났으니 저 가운데 진문수를 찾아서 쫒아 버릴 수 있겠느냐!”
“선경스님은 장삼입고 향곡스님께 “만 문수, 진 문수,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의 모든 노화상이 다 내 콧구멍으로 나왔습니다.”
“콧구멍이 어디 있는고?”
“본래 콧구멍은 없지만 어디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렇게 나왔습니다.”
“참 공부도 많이 하고 애도 많이 썼습니다. 이제 그만 노시고 젊은이들 탁마나 해주시오.”
혜관스님이 주장자를 획 집어던지자 문창살을 뚫고 나갔다.
“옳고 옳다!”
내원사는 원래 통도사 상선원이라 근대 선지식들이 이곳을 항상 거쳐 가기 때문에 이런 기백이 넘치는 일화가 무수히 많다. 그 넘치는 활발한 에너지로 인해 선방에서 은은한 방광이 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꾸준하게 정진 잘하는 도량으로 만들면 비구니 선사가 다시 나와 후학을 지도 할 것으로 모두 믿고 있다고 한다.
내원사 이렇게 선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찰이다 보니 재가신자를 위한 교육이나 법회는 주로 산내암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선원운영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주지스님을 비롯한 외호대중들의 원력으로 수좌들의 대중공양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좌는 언제나 일 없는 것이 선객의 자세이며 수좌의 최고 공양은 정진이라는 취지아래 대중공양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없이 정진에만 몰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항상 그들을 격려해주고 용기주고 힘을 주는 수좌천국을 만드는 것, 이것이 내원사 동국제일선원의 지향점이라고 아니겠냐며 웃으시는 모습이 천진불 같다.
선원 수행 중 세대차간의 문제와 화합에 관해 입승스님에게 물었다
“사실 전에는 세대 차이를 못 느꼈는데 8안거가 도입되면서 세대차를 느낍니다. 8안거는 수행을 위한 제도인데 본말이 바뀌어 주지소임이나 상좌를 두기 위한 자격요건으로만 여기고 선방에 오는 경우가 제일 힘듭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발심하고 정진하다보면 어느새 수좌가 되기 때문에 좋게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아, 그리고 좋은 점은 젊은 수좌가 많아졌어요.”
첫 철나러 오는데 나이도 많고 모시옷 입으면 최고의 수좌처럼 보이지만 지도하려는 선배입장이 받아들이지는 분위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갈무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지스님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일침을 놓으신다.
“자비심으로 중생구제 해야 하는데 그걸 해 줄 이가 없다면 큰일이죠. 서로 인욕하고 자비심으로 기다려 주고, 작은 일인 경우엔 차 한 잔 하며 대화로 풀어내야 합니다. 이제는 승려 한명이 재가자 천명을 상대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어요. 보배로운 존재로 길러내야 합니다. 교육을 철저히 해서 최고의 선각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선지식을 모시고 수행했던 납자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며 동시에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야 할 세상에서 우리들 자신이 살아야 할 방법과 후학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결정지어지고 있었다.
전국비구니회에 바라는 바를 물으니 다시 교육의 문제를 말씀하신다.
“전국의 비구니에게 가장 혜택이 가는 일은 교육밖에 없습니다. 제방에 선지식이 귀하니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자를 위한 교육이 연중행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강원과 대학의 학인에게는 대강백이, 제방의 선객들에겐 대선사께서 적극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경과 선에 해박하여 중생지도에 막힘이 없는 그런 수행자를 만들어내 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선객이라고 선원에서만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이들을 위해 선의 세계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선객은 경전에 대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깨달음의 언어를 만나 표현의 세계를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구니 제도가 단일화되어 정체성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 스님께 내원사 선원의 미래에 대해 묻자, 내원사는 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3년 결사를 시작한 이후 99년까지 6번째 회향을 하였단다. 다시 결행을 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강력한 리더의 부재와 결사대중외에 받기 어려운 점 등의 이유가 있어서 어려운 점이 안타깝고, 산중에 큰스님이 계셔서 마음 경계가 일어났을 때 대적해야 하는데 입승소임을 살면서 그 일을 감당 못할까 가장 걱정이 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법기를 알아보고 법기를 다스려줄 선지식에 대한 그들의 타는 목마름이 전해져 오니 속히 천성이 나신 이 도량에서 무르익은 도의 힘이 새로운 선지식을 출현하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하는 마음으로 선해일륜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합장했다.
전체 151
- 전체
- [불기2534(1990년)5월)
- [불기2534(1990년)6월)
- [불기2534(1990년)7월)
- [불기2534(1990년)8월)
- [불기2534(1991년)
- [불기2534(1993년)
- [불기2534(1996년)
- [불기2534(1997년)
- [불기2534(1998년)
- [불기2534(1999년)
- [불기2534(2000년)
- [불기2534(2001년)
- [불기2534(2002년)
- [불기2534(2006년)
- [불기2534(2007년)
- [불기2534(2008년)
- [불기2534(2009년)
- [불기2534(2010년)
- [불기2534(2012년)
- [불기2534(2014년)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 14 |
[권두언] 지난 4년을 회고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437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437 |
| 13 |
[치사]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길 기대하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376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376 |
| 12 |
[초대시Ⅰ] 석굴람 대불大佛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239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239 |
| 11 |
[시사컬럼] 전통사찰, 보존과 홀용의 해법 찾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434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434 |
| 10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①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3092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3092 |
| 9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② 대둔산 법계사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3358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3358 |
| 8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③ 법륜사 제일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97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897 |
| 7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_④ 팔공산 백흥암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913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913 |
| 6 |
[기획특집Ⅰ] 전국비구니 선원 탐방 _⑤ 승련사 승련선원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806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806 |
| 5 |
[기획특집Ⅱ] 국제학술대회 및 법화산림_① 삼장의 재중적 해석에 대한 재고 필요성 / 진우기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추천 0
|
조회 2782
|
전국비구니회 | 2018.06.22 | 0 | 2782 |









